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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9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고후5:11-21)
작성일 :  2018-09-20 11:16
이름 :  admin 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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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     (고후5:11-21)

  지금 우리 앞에 위대한 인생고백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그의 일생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을 받고 있다고 외쳐댑니다. 그래서 자기는 어쩔 수 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이끌리어 꼼짝 할 수 없는 그 사랑의 포로가 되어 버렸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말로나 글로도 표현 할 수 없는 자기 영혼의 고백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에 어쩔 수 없는 자기 인생을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 그것은

  . 나를 감격하게 해 버립니다(13).

  본문13절에「미쳤다」함은 초월의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정신적 이상함을 말하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에 도취되어 황홀한 지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함을 받는 상태로 세상사람 보기에는 꼭 ‘예수에 미친 사람’처럼 보여지는 것입니다.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 자신 안에 세상 사람이 자리잡지 못하도록 해 버립니다.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미치도록 감격하는 그 지경이 최고의 행복입니다. 진정 이 세상에서 미치는 세계가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는 바로 감격하며 사는 인생입니다.

  . 예수를 위하여 살게 해 버립니다(15).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 삶의 목적을 변화시켜 버립니다. 자신을 위하여 먹고 마시고 움직이지 않고 나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게 합니다(9). 사람 중에 언제 어디서든 자기의 존재의의와 목적이 분명한 자는 소신 있는 말을 할 줄 압니다. 그리고 행동이 따라 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강권을 받은 자의 소행입니다. 결코 그리스도의 강권을 받는 자의 눈과 귀와 입이 그리스도의 영광 앞에 침묵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충성입니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사랑입니다(15:13). 이렇듯 그리스도의 강권하시는 사랑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워 주어야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강권이 나에게 요구하시는 존재의의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기독신자들의 이 세상 존재의의와 목적 중의 하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주는 사랑운동입니다. 이는 또한 지상교회가 존재하는 중대한 의의입니다(28:19,20).

  . 나를 그리스도의 사신이 되게 해 버립니다.

  그것은 곧 화목케 하는 사신의 삶입니다. 이것이 곧 화목케 하는 직함을 받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한 사신이라고 했습니다. 이 성경을 기록할 당시 로마제국의 사신은 실로 대단한 존재였습니다. 그는 로마황제의 신분이요 제국의 명예요 권력의 화신이었습니다. 로마황제의 임명을 받은 황제는 점령지의 장군과 함께 로마제국의 깃발을 앞세우고 부임합니다. 그리고 피정복 국민들과 함께 협정을 맺고 새 영지의 경계를 정하고 새로운 로마통치법령을 반포한 후 돌아와 황제에게 보고합니다. 이때 황제의 사신은 바로제국의 대표요 황제의 대리자입니다. 제국의 명예와 위엄은 그 사신의 언어와 행동과 통치에 달려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로마제국과 황제의 강권을 받아 움직이는 자입니다. 이렇듯 사도바울, 그리고 오늘의 교회는 세상 앞에 이러한 사신입니다. 그러나 로마제국과 황제의 사신이 아니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입니다. 공포의 사신이 아니라 사랑과 복음을 사신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강권을 받고 있는 사신입니다. 저 로마제국의 사신들은 황제의 사랑이 나를 강권한다 하지 않았습니다.  

독일 나치주의자들은 히틀러의 사랑이 나를 강권한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들은 황제와 히틀러에 대한 공포와 증오가 앞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늘의 지상교회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강권을 받고 왔습니다. “우리는 그의 사신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목하십시오 그리고 자녀가 되십시오 빛 가운데 거하십시오 영생을 선물로 받으십시오” 할 수 있습니다.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위하여 미치게 합니다. 그것은 우리로 예수 위하여 살게 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이 되게 합니다. 미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없습니다. 예수를 위하여 존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없습니다. 어떤 경우든 우리가 받은 모든 달란트(은사)는 그리스도 복음의 사신이 된 표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결코 그리스도의 사랑은 금과 은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명성과 열정, 인기를 위한 봉사, 어떤 법률이나 제도적인 구속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신 십자가의 사랑 그것뿐입니다. 그 아가페의 사랑만이 의심을 더디 하고 믿기를 빨리합니다. 정죄하기를 더디 하고 의롭게 여기기를 빨리합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내하기를 빨리합니다. 폭로하기를 더디 하고 숨겨주기를 빨리합니다. 견책하기를 더디 하고 봉사하기를 빨리합니다. 불평하기를 더디 하고 감사하기를 빨리합니다. 요구하기를 더디 하고 주기를 빨리합니다.「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1:1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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